기억의 잔열과 외피 / 김예늘
기억의 잔열과 외피 / 김예늘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기법인 플래시백(flashback)은 이야기의 진행 도중 과거의 장면으로 전환되는 장면 연결 방식이다. 흔히 회상이나 옛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쓰이며, 현재에서 과거로의 감각적 전이를 "심리학에서 플래시백은 현실의 어떤 자극이 과거의 강렬한 기억을 불러오는 현상을 뜻한다. 단순한 회상과 유도한다."
달리,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무너지고 경험의 감정적 밀도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상태를 말한다. "신종민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시선을 멈추게 한다. 처음엔 가상 세계처럼 느껴지지만, 곧 그것이 현실의 일부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 현실 역시 어딘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실체는 있지만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구조, 익숙하지만 낯선 형상들. 작가는 기억의 파편을 불러내 명확함과 희미함 사이를 유영하게 하고, 그것들을 다시 실재의 자리에 안착 시킨다.
이러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그는 게임의 MOD(modification) 방식에서 착안한다. 하나의 대상을 분해하고, 이를 모듈화 한 뒤 재조립하는 과정은 그에게 창작의 중요한 전략이 된다. 그러나 그의 조립은 단지 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 구조물로 현실 공간에 실현되며, 가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드러낸다. 이 틈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되는 모호한 경계이자,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생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 전반은 결국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해, 단순한 유희를 넘어 감각의 층위를 넘나드는 탐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조립적 사고는 조형 방식에도 드러난다. 그는 와이어 프레임으로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얇은 시멘트를 덧입혀 형체를 완성해간다. 결국 완성된 조형물은 내부가 비어 있는, 표면만이 존재한다. 작가는 형체를 만들되, 그 안은 의도적으로 공백으로 남긴다. 그것은 마치 기억의 외피만이 남아 있는 조각 같고, 이미 사라진 감정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시도를 넘어서, 그가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을 다루며 감각을 재구성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 《플래시 백》 은 그의 유년 시절 애착 인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와 그의 가족의 기억 속 사적인 공간과 대상을 바탕으로 얽힌 조각들이, 또 다른 실재의 형상으로 변환되어 관객 앞에 나타난다. 개인적 기억의 파편들은 성인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립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낯설고 새로운 조형으로 치환된다.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 곳곳에서 기억을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에 깨어나는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로 보았다. 그에게 플래시 백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가로지르며 감각과 의식 속으로 스며드는 감정의 단편을 드러낸다.
신종민의 작업은 이 순간과 장면을 떠올리고 포착하여, 이를 물리적 조형으로 번역해낸다. 기억이 단지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감각 구조물로 구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과거의 특정 장면들을 그 당시에는 통제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 파편들을 조형의 언어로 다시 배열하며, 비로소 그 기억에 조심스럽게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유년기의 끝을 자신의 감각과 의지로 천천히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며, 마침내 그 시기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관객 또한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과 마주하기를, 그리고 그 잔열을 통해 지금-여기의 감각을 새롭게 구성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