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곰돌이를 버렸을까? / 공재
그는 왜 곰돌이를 버렸을까? / 공재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시간 속 가장 오래된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 속에 있던 사물들을.
내가 신종민의 곰인형을 처음 안건 2010년 여름이었다. 강원도 동해시 그와 가족이 살던 아파트, 신종민은 그의 방에서 내게 자신의 가장 오랜 친구인 곰돌이를 소개해 주었다. 한눈에 보아도 낡고 오래된, 하지만 청결히 관리되어 보이는 황갈색의 곰인형은 침대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그렇게 나는 신종민이 2살 때부터 함께해 온 애착 인형, 곰돌이를 알게 되었다.
신종민은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초기에는 곰돌이를 기숙사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훗날 그의 말에 따르면 혹여나 친구들이 아직도 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놀릴까 걱정이 컸다고 한다. 나에게곰돌이를 소개해 주고 몇 주 뒤, 자신의 걱정이 우려였음을 안 신종민은 기숙사로 곰돌이를 데려왔다. 그렇게 곰돌이는 신종민의 대학교 기숙사, 자취방, 그리고 근래 작년 가을까지 살았던 그의 집, 침대 위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건은 작년 가을에 일어났다. 신종민이 28년간 함께해온 곰돌이를 버린 사건.
왜 버렸을까? 신종민은 곰돌이를 버리는 데에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다 먹고 난 치킨 잔여물을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듯, 거리낌 없이 곰돌이를 버렸다고 했다.
전시장의 문을 열면, 작가가 기억하는 태초의 집과 사물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비단 작가뿐만아니라, 90년대를 살았던 이라면 반가운 것들이다. 녹색 대문과 사자 형상의 문고리, 연탄난로와 알사탕 상자 등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 시절의 사물들을 공간에 꾹꾹 채워 넣었다. 장소의 이동, 쓸모의 다함으로 작가에게서 떠난 공간과 사물들은 추억이라고 불리는 지극히 추상적인 관념이 되어 기억에 박혔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과거의 공간은 마냥 정겹고 그리운 공간만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신발과 마당의 뱀, 그 길고 위협적인 생물로부터 자식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빗자루질은 이 공간이 단순히 그리움의 장소가 아님을 암시한다. 작가에게는 기억의 끝에 있는 태초의 장소, 하지만 엄마에게는 젊은 날의 희생과 불편함이 존재하는 트라우마적 공간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엄마의 트라우마는 자식에게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애증의 장소로 다가왔음을 짐작해 본다.
애증으로 남아있는 공간과 사물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어쩌면 이번 전시는 작가와 그의 가족이마냥 자랑하고 싶지만은 않은, 오래된 치부를 훔쳐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본인과 가족의 낡은 기억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눈썰미가 예리한 사람이라면 1층 입구에 놓인 떡국 작업에서 누추한 집에 방문한 관람객을 대접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있을 것이다.
전시장 지하층에는 1층에 전시된 오랜 공간과 사물들이 일종의 화형(火刑)을 당하는 듯한 형상이 있다. 파괴가 아니라 의례적 정화(ritual purification)로써 보여지는 이러한 화형식은 실존적또는 트라우마적 기억이 경험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작가가감추고만 싶었던 감정-전이의 종결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왜 28년간 함께했던 애착 인형 ‘곰돌이’를 버렸을까? 작가가 만들어 낸 형상들은 오래된 사진과 부모님의 기억, 어렸을 적 본인의 기억으로부터 꺼내온 것들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과 사물들은 형상을 띄되, 실존의 맥락에서는 이미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과거의 공간과 사물들을 다시 창조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배치하는 과정을 겪는다. 어릴 적, 자신이 통제하지 못했던 환경과 기억들이 이제는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의도대로 정렬되고 다뤄진다. 이런 행위는 작가 나름대로 존재로서의 성장과 과거에 대한 극복 의지를 나타내는 실존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앞서 기술한 맥락으로 나는 내 나름대로 작가가 곰돌이를 버린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실존적 선언의 마지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평생을 함께했던 곰돌이를 버린 행위는 작가 내면에 각인되어 있던 오래된 쉐마를 재구성하는 마지막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곰돌이를 버린 순간, 신종민은 마침내 진정한 어른으로의 도약을 한 것이 아닐까?
마치 성인식을 치른 것처럼.